전체글 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자기다움 매년 새해를 맞이하며 그 해의 목표와 다짐들을 정리하곤 한다. 그리 계획적인 인간이 아닌 내게는 매우 드문 일이지만, 2012년 말 1년 간의 해외생활 마무리를 앞두고 막연히 한국에 돌아가면 무얼할까, 하는 고민에 끄적거리기 시작했던 게 계기가 되어 매년 새해 목표를 세우는 게 나름의 신년 관례가 되었다. 오픽 AL 획득 같은 목표들은 우습게도 10년 동안 매해 개근하며 스스로의 게으름에 대한 증거가 되었고, 취업 하기, 면허 따기 같은 예전 목표들을 볼 때면 어린 시절 그때의 간절함과 고민들이 다시금 떠오르곤 한다. 그렇게 매번 그해 내게 주어진 다양한 상황에 맞는 목표를 짜고 나면 글을 마무리는 항상 한 가지 고정 목표로 마무리되었다. 나 자신 지키기. "항상 주체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 더보기 Stepping 2024 이렇게 또 한해가 지나갔다. 4월이 되어서야 24년의 각오를 되새김은 그만큼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방증일까. 나다움을 꽤나 많이 잃었던 한 해 같다. 옳다고 생각함에도 행동하지 못했고, 맞다고 생각하는 길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잃을 것과 두려움이 많아진 탓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되새기며 24년 한해는 더 나아지기를 고대해본다. 1. 건강 작년 한해는 건강에 있어서만큼은 한걸음 퇴보한 시간이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한창 재미 붙였던 러닝에 소홀했고, 연말에는 발목 골절까지 겹쳐 몇개월간 제대로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올해는 꾸준한 운동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올해의 중간 목표로 연간 마일리지 600km 달성 / 하프마라톤 5회 완주를 목표로 .. 더보기 수심 스무살, 이제는 아득해진 대학 생활의 시작을 앞둔 새내기들은 서로의 계명들을 앞다퉈 연설하곤 했다. 그 즈음 한국은 싸이월드 강점기를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럴듯한 격언 하나쯤 입 밖에 내뱉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라틴어, 스페인어, 영어를 총 망라하여 카르페디엠, 케세라세라, 디스투쉘패스 등 세상에는 그럴듯한 삶의 격언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저 취향에 맞게 그 중 하나를 택일 하여 각자의 삶의 모토 인양 떠들어 대곤 했다. 나는 이렇게 살아갈거야 하는 일종의 자성예언. "나이에 구애 받지 않는 삶을 살겠다" 그게 나의 첫째 계명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 수많은 잠언들을 제치고 왜 나이가 첫번째 표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정표를 꽤나 깊게 세운 탓에 여태 그 예언에 맞게.. 더보기 미결과 영원 사이 연휴 마지막 날, 졸린 눈 비비며 일어나 스마트폰을 집어 든 나는 팔로우 해두었던 인스타 채널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비보를 건네받았다. 현시점 가장 촉망 받는 육상 선수 켈빈 킵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 이야기의 진위를 의심하게 할 만큼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인 뉴스였지만, 차분히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인스타 포스팅의 담담한 어조는 그 소식이 거짓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국내 언론 매체의 보도는 나오지 않았지만, IOC의 공식 홈페이지에 그의 사망에 대한 기사가 올라온 이상 이 충격적인 소식은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허망한 일이었다. 1999년생이니 여느 누구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이른 것은 당연하겠지만, 마라톤에 한 톨이라도 관심을 두었던 사람이라면 그 허망함의 정도는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더보기 4,160주 우리나라가 합계 출산율 0.7명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는 뉴스 기사가 무색하게도, 요즈음 내 주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아가들이 새로 태어난다. 생각해 보면 몇 해 전 시도 때도 없이 결혼식에 불려 다녔으니, 몇 해가 지나 아이 소식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우습게도 4-5년 전쯤에는 쏟아지는 주변의 죽음들 앞에서 삶이라는 건 꽤나 하릴없구나하고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와 반대로 삶이라는 건 이렇게 별일 아닌 듯 시작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내 존재도 그들의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과 노력의 결과로 생겨난 거겠지. 삶이라는 게 하릴없고 별 게 아니라고 해서 하루하루의 삶에 대해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지독한 냄새에도 금세 무뎌지는 코처럼, 삶은 이미 그.. 더보기 Downsizing 이사를 앞두고 있다. 2018년 말 갑작스레 온 가족에게 생소한 곳, 성남으로 이사 온 뒤 어느새 5년이 흘렀다. 본격적으로 사회인으로서 보낸 5년이었기에 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짧게 지나갔지만, 그래도 생소한 이 집 방구석 군데군데 시간의 흔적이 남았다. 막 이사했을 땐 침대 머리맡을 어느 쪽에 두어야 하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모든 가구가 원래 그곳이 자기들의 자리이었던 것 마냥 차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가구들에게는 야속하게도 나는, 우리 가족은 몇 달이 지나면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또다시 이동할 계획이다. 이사 갈 집의 크기는 지금과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왜인지 모르게 새집은 지금의 짐들이 가득 들어차기에 부족한 느낌이 든다. 5년간 헌 집 여기저기를 빼곡.. 더보기 Cosmic Ray 2013년 열린 여느 게임 대회중. 주어진 미션을 얼마나 빨리 클리어하느냐로 승패를 가루는 스피드런 종목에서 사건은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던 한 선수의 캐릭터가 어느 한순간 다른 장소로 순간이동 해버린 것이다. 게임상의 버그를 이용하는 글리치(Glitch) 플레이가 허용된 대회였고,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에 유야무야 지나가 버릴 일이었지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동일한 조건을 충족한다면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는 다른 글리지 플레이와 달리 이 순간이동은 그 순간 이후로 단 한 번도 재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조차 본인의 캐릭터가 이동된 이유를 모르고 있었고, 결국 수많은 사람이 몇 년간 분석한 끝에 믿기 힘든 결말에 다다랐다. 범인은 우주방사선(Cosmic Ray). .. 더보기 살길 "나이에 구애 받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20대 내 삶의 모토였다. 그 다짐 덕분인지 20대 후반의 나는 9년째 대학생 신분이었다. 핑계는 많았다. 한시도 게을리 산적은 없었고, 아르바이트던, 해외경험이든, 인턴이든 나름 경험한 것은 많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 자부심이 무색하게 수십 건의 불합격 소식을 접한 후, 그래 이번 시즌은 망했구나, 한탄하며 여느 취업 특강에 들렀다. 머릿속에 장래에 대한 고민만 가득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뻔한 질문을 던졌고, 강연자의 답은 단호했다. "20대 후반이라면 스스로 밥벌이는 책임져야 한다." 그 한마디를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입사 생각 없이 연습차 지원해 두었던 회사 두 곳 중 한 곳에 입사하기로 .. 더보기 관계의 일반론 가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근원적인 싫증이 나면, 모든 사람과 그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를 꿈꾸곤 한다. 마치 항상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며 더 이상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지구와 달 같은 관계. 타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골치 아플 필요 없이 모든 인간사를 쉽게 쉽게 만들어 주는 쉬운 답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사람이란 본래 외롭고 항상 곁이 필요한 존재이기에, 하루하루 살다 보면 자연스레 누군가에게 곁을 내주기 마련이고 그렇게 의도치 않은 관계들이 생겨난다. 나는 네 얼굴을 안다 수준의 아는 사람, 즉 지인으로 시작해 함께한 시간과 경험을 곁들이면 우리는 슬슬 친구라는 거창한 칭호를 그에게 부여한다. 그 너머 아주 약간의 우연들과 호감이 덧붙여진다면 서로가 서로에 대한 독점권.. 더보기 머리를 자르며 끈기가 있다고 해야할까. 문득 곁을 살펴 보니 내 주위에는 나와 긴 시간을 함께한 존재들이 참 많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도 시덥잖은 카톡을 남기는 대머리 내 친구는 20년 전부터 계속된 끈질긴 인연이고, 지금도 내 머리를 책임지는 홍대 앞 이끼헤어는 십여년전 전역 직 후의 우연한 첫 만남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책 모임은 어떠한가. 나는 여전히 스스로가 모임에 조인한지 얼마 안된 꼬꼬마라 생각하는데, 벌써 4년차에 접어들어 영락 없는 고인물 취급을 받고 있다. 코로나 직전 큰 뜻 없이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는 피티까지 고려한다면 나는 시작했다하면 3-4년이요, 좀 지났다하면 10년은 금방인 숙성 전문 인간이다. 이 쯤 되면 내가 긴 시간에서 오는 안정감을 좋아하는 사람이겠거니 싶지만. 시간이 .. 더보기 이전 1 2 3 4 5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