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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ping 2025 인생사 새옹지마. 일 년 동안의 생활을 위해 이집트로 향하는 하늘 위에서 2025년을 그려본다. 1년 전에 오늘 하루를 상상할 수 없었듯, 일 년이란 시간은 너무도 길고도 다채로워서 또 나를 어디로 끌고가련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저 내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나를 더 행복한 미래로 이끌어갈 것이라 믿으며 25년 한해, 그리고 이집트에서 일 년을 그려보려 한다. 1. 건강, 또 건강. 몇 년간 달려가며 깨달은 한가지, 운동은 우리의 삶을 단순하지만 밀도 있게 만들어준다. 공백으로 가득한 일 년간의 이집트 생활을 얼마나 의미 있게 채워나갈 수 있느냐는 꾸준한 운동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이집트에서의 한 해만큼은 하루하루 자그마한 운동이라도 꾸준히 해내는 사람이 되길. 연간 러닝 마일리지 1,000km.. 더보기
시간이 멈춘 그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찰나를 맞닥뜨렸음을 직감할 때가 있다. 삶은 꽤 영화와 닮아 행복과 불행 둘 중 무엇이든 구분치 않고 마구 일어나기 마련인데, 가끔은 그 모양새가 너무나 또렷해 그 찰나를 지나면서도 아 이건 행복이구나, 아 이건 불행이구나, 하고 즉시 알아채 버리곤 마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 생애 처음으로 대서양을 목도한 순간이 있었고, 반대로는 오랜 연인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 내 눈앞에 쪼그려 앉은 그녀를 바라보던 순간이 있었다. 2018년의 여느 하루도 얄궂게 내게 그런 찰나가 되었다. 나는 삼남매의 막내로 살아왔다. 서울 변방의 변변치 않은 동네였지만 큰 누나는 여러모로 동네에서 회자되는 인물이었다. 아빠를 닮은 또렷한 이목구비 덕에 남자아이들의 관심을 끌.. 더보기
시즌 아웃 삶이 마치 하나의 시즌제 드라마처럼 분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시간이 흐르고 뒤늦게 되돌아보니 그때는 그런 계절이었었구나, 그 시절은 그런 모습으로 저물어 들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곤 했었지만, 이제는 살아가는 일에 경험치가 쌓여 어느 샌가부터 담담히 각 계절의 끝이 다가옴을 알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 간 몇 개의 계절을 보내주었을까. 생각해 보면 각 삶의 뭉텅이들은 한 구석도 닮은 데가 없었다. 여느 때에는 그저 집-학교-집-학교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보내면서도 지루한 줄 몰랐었고, 여느 때에는 전국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주말을 채워나가면서도 삶의 슴슴함을 토로하곤 했었다. 계절이 지나자,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가까웠던 그이와 서로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리곤 말았는.. 더보기
우연히 뻔하게도 무기력을 느낀다. 때로는 삶의 중차대한 사건들이 너무나도 사소한 우연들을 통해 좌우된다는 것을 느낀다. 오래전 술을 진탕 마신 후 새벽 일찍 일어나 잡아탄 열차에서 그녀를 만났다. 만일 딱 한 잔을 더 마셨다면, 그래서 다음 날 새벽 그 열차를 잡아탈 수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를 만나 함께 수년을 보냈을까. 만일 몇 년 전 수요일 퇴근 후 책 모임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요리조리 에세이 모임에 찾아들어 와 이 글을 휘갈기게 되었을까.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내 삶을 통째로 좌우한 그 사건들은 큰 의미 없이 그저 우연히 펼쳐졌고, 나는 그 찰나의 파도에 맞춰 이리저리 팔을 흔들며 어영부영 여기까지 나아오고 .. 더보기
비판과 침묵 사이 러닝이 대세다. 지난 몇 년간 지리한 설득에도 넘어오지 않던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 어떤 러닝화를 살지 물어오는 걸 보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수십 년 동안 달려온 마라톤 클럽 어르신분들이 지역마다 산재해 계신 이 판에 몇 년짜리 경력 가지고 유세 떨기는 민망한 모양새이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나만의 취미를 뺏긴 듯한 느낌에 기분이 묘하다. 두 달 동안 접수 받아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던 지방 군소 대회에 접수 대기열이 생기고, 러닝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운동 유튜버들이 일제히 주 종목을 러닝으로 변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러닝은 나에게 일종의 '나만 알고 싶은 밴드' 같은 존재였을까?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의 고시 합격 소식을 듣던 순간처럼 양가적인 감정이 교차한다. 그렇게까지 .. 더보기
Connecting the dots 과거 애플의 광신도임을 자랑스러워하던 시절, 간간히 스티브 잡스의 감명 깊은 프레젠테이션 영상들을 넋이 빠져라 감상하곤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스마트폰이 막 세상에 퍼져가기 시작했던 2010년대 초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위상은 어마어마했고, 온갖 매체들은 마치 종교라도 된 마냥 잡스의 행적 하나하나를 되짚어가곤했다.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이면서 본인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난 기이한 이력과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 회사에 복귀해 세상을 뒤집어 놓은 제품은 만든 그. 그에게는 단순한 기업가 그 이상의 아우라가 있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인생을 통달한 현자의 아포리즘처럼 느껴졌다.그의 여러 연설 중 유난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소재가 있었으니, 이른바 'Conneting the dots' 이야기였다.. 더보기
소개팅 썰 솔로가 됐다.30대 중반에 솔로가 된다는 건 수많은 주변인들의 동정심을 자아낸다. 누군가에게 이 이별은 입시-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중차대한 사고이고, 누군가에게 이 이별은 이제 긴박히 결혼 상대를 찾아야하는 전시상황, 데프콘이다. 걱정해주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더 이상 시간 지체하지 말고 누구라도 소개받으라고 등을 떠밀었고, 나 또한 주변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초조함에 소개팅 시장에 뛰어들었다.늘 장난삼아 에세이 모임 멤버에게 당신은 소개팅 시장의 좋은 매물이라는 칭찬 섞인 장난을 치곤 했는데, 막상 소개팅 시장에 들어선 나 또한 상황은 비슷했다. 시장 매물치고 나이가 많은 게 꽤 큰 흠이긴 했지만, 남성 매물의 최우선 기준인 키 180cm를.. 더보기
공교롭게도 주류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마케팅 전공 교수들이 선발한 학부생 4명을 대상으로 3개월동안 진행되는 인턴 프로그램의 첫 OT날, 면접 때는 보지 못했던 낯선 인물이 등장했다. 큰 체구에 앳된 얼굴, 서툰 한국어를 가진 누군가가 인턴으로 함께 합류하게 된 것이다. 채용전환형 인턴자리는 아니었기에 그를 포함한 5명의 인턴들은 그럭저럭 원만한 3개월을 함께 했고, 3개월이 마무리 될 즈음 그의 입을 통해 그 좌초지종을 알게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 회사 마케팅 팀장과 인연이 있었고, 스무살을 갓 넘긴 아들의 학부 첫 여름방학을 무의미하게 놀리기 싫어 팀장에게 일종의 육아를 부탁한 것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참 요상한 그림이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당시의 나는 그저 둔감하게 그 상황을 받아.. 더보기
이상한 관계 이별 이후 엔 이따금 의미 없는 가정을 늘어놓곤 했다. 우리가 그저 친구 사이였다면 이따위 사소한 이유로 끝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도 종종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전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 애초에 친구로 시작한 관계가 아니기에 연인이 될 수 없었다면, 친구조차 될 수 없었겠지만, 어차피 의미 없는 가정법에 개연성이 필요하랴. 그저 이별 이후의 쓸쓸한 공백들을 채워줄 수만 있다면 어떤 가정이든 쓸만하다. 세상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꽤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연인 간의 사랑은 유일해야 하며, 연인은 서로의 모습을 거리낌 없이 서로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연인으로서 충분히 친밀하지 못하다는 것은 관계의 결격사유가 된다. 세상 어딘가에 더 친밀한 누군가가 있어서는 안 되며, 그 친밀함.. 더보기
이빨을 뽑으며 새해맞이를 겸해 치과에 가 스케일링을 받을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넌지시 사랑니 발치를 권해오곤 했었다. 아직 아무런 불편함도 없지만, 언젠가는 고놈이 옆 치아를 건드려 속을 썩일 수 있으니, 미리 뽑아두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몇 해 동안 그런 권유를 받을 때마다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덜커덕 먼 미래에 발치 약속을 잡아버리고 말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몇 달 후로 정해둔 이 뽑는 날은 다가오고야 말았고, 나는 내 발로 내 뼈의 일부를 도려내기 위해 치과로 향했다. 어찌 보면 그저 턱이 좁아진 현대인 진화의 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사랑니인데, 나를 포함한 수많은 현대인은 그 막둥이 치아 하나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잇..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