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스무살, 이제는 아득해진 대학 생활의 시작을 앞둔 새내기들은 서로의 계명들을 앞다퉈 연설하곤 했다. 그 즈음 한국은 싸이월드 강점기를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럴듯한 격언 하나쯤 입 밖에 내뱉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라틴어, 스페인어, 영어를 총 망라하여 카르페디엠, 케세라세라, 디스투쉘패스 등 세상에는 그럴듯한 삶의 격언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저 취향에 맞게 그 중 하나를 택일 하여 각자의 삶의 모토 인양 떠들어 대곤 했다. 나는 이렇게 살아갈거야 하는 일종의 자성예언. "나이에 구애 받지 않는 삶을 살겠다" 그게 나의 첫째 계명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 수많은 잠언들을 제치고 왜 나이가 첫번째 표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정표를 꽤나 깊게 세운 탓에 여태 그 예언에 맞게.. 더보기 미결과 영원 사이 연휴 마지막 날, 졸린 눈 비비며 일어나 스마트폰을 집어 든 나는 팔로우 해두었던 인스타 채널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비보를 건네받았다. 현시점 가장 촉망 받는 육상 선수 켈빈 킵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 이야기의 진위를 의심하게 할 만큼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인 뉴스였지만, 차분히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인스타 포스팅의 담담한 어조는 그 소식이 거짓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국내 언론 매체의 보도는 나오지 않았지만, IOC의 공식 홈페이지에 그의 사망에 대한 기사가 올라온 이상 이 충격적인 소식은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허망한 일이었다. 1999년생이니 여느 누구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이른 것은 당연하겠지만, 마라톤에 한 톨이라도 관심을 두었던 사람이라면 그 허망함의 정도는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더보기 4,160주 우리나라가 합계 출산율 0.7명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는 뉴스 기사가 무색하게도, 요즈음 내 주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아가들이 새로 태어난다. 생각해 보면 몇 해 전 시도 때도 없이 결혼식에 불려 다녔으니, 몇 해가 지나 아이 소식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우습게도 4-5년 전쯤에는 쏟아지는 주변의 죽음들 앞에서 삶이라는 건 꽤나 하릴없구나하고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와 반대로 삶이라는 건 이렇게 별일 아닌 듯 시작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내 존재도 그들의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과 노력의 결과로 생겨난 거겠지. 삶이라는 게 하릴없고 별 게 아니라고 해서 하루하루의 삶에 대해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지독한 냄새에도 금세 무뎌지는 코처럼, 삶은 이미 그..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8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