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hings get old"
신형철 작가의 글을 빌리자면 하나의 아포리즘인 한마디, "모든 것은 낡는다"는 한마디는 참 많은 의미들을 내포한다.
그 말을 내뿜던 할머니조차 젊은 시절을 지나 늙어졌고,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나오는 사랑들도 결국은 하루 하루 낡아진다.
여느 영화에서처럼 서로에 대한 사랑 표현이 뜸해지고, 점차 서로에게 불친절해지는 모습의 권태기를 표현했다면 이 영화의 울림이 조금은 덜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너무나도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커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아쉬움을 배가시킨다. 서로에게 악담을 퍼부으면서 낄낄거릴 정도로 그들은 유머도 취향도 닮아져있었고, 이 모습은 그들이 정말 너무나도 잘 맞는 한쌍이었다는 것을 납득시킨다. 같은 지점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둘의 취향이 그만큼 크게 일치한다는 유력한 증거니까.
영화를 보며 내 머릿속을 스쳤던 또 하나의 아포리즘은 '많을 수록 무가치해진다'라는 명제였다. 원래는 경제학 수업에서 통화량이 많을 수록 통화가치가 떨어짐을 설명하는 명제였는데, 여느 아포리즘들이 그렇듯 여러 분야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을 발견한다. 국회의원 정족수가 그렇고, 내 핸드폰 속 연락처 수가 그렇고, 마고와 루의 사랑이 그렇다. 연애를 하면,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 사랑의 총량은 점점 커져갈지 모르지만, 잦아지는 사랑속에서 우리는 점차 무뎌지고 사랑은 점차 그 가치를 상실한다.
마고는 루에게 그리고 다니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만 그 무게와 가치는 너무나 판이하다. 마고는 루에게 시도때도 없이 사랑을 외치고 이를 키스로도 표현하지만 이는 너무 일상적인 표현의 하나로만 인식될 뿐 무게를 잃었다. 다니엘에게는 사랑한다는 그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게 너무나도 힘들고, 심지어 말한 적 없이 말한 줄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까스로 나온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 무엇보다 큰 고백이 되었다. (물론 마고가 루에게 가진 사랑이 작다거나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너무나도 역설적으로 우리는 언제든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때, 진짜 사랑을 말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모든것이 가득 차 넘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밤 늦은 시간 정류장 앞 작별인사가 더이상 아쉽지 않고, 상대에게서 온 문자 하나하나를 곱씹어 볼 일들이 사라져간다.
가끔씩은 아무런 표현 없이 눈을 마주보고 싶다. 눈과 눈으로만 대화하던 그 날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Movie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Que Sera Sera (아몬드 / 보이후드) (0) | 2019.10.15 |
---|---|
인생은 금물 (행복의 충격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0) | 2019.10.15 |
하루의 디테일 (일간 이슬아 / 패터슨) (0) | 2019.07.07 |
채워질 자리 (걸어도 걸어도 - 고레에다 히로카즈) (0) | 2019.07.07 |
살고 싶은 삶 (모스크바의 신사 - 에이모 토울스) (0) | 2019.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