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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Book

하루의 디테일 (일간 이슬아 / 패터슨)

오늘 하루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어김없이 비슷한 시간 즈음 게슴츠레 눈을 뜨고 시리얼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여느 소시민의 하루들은 그렇게 흐른다.

 

오늘을 사는 현슬이도, 이번 주를 산 패터슨에게도 하루하루는 그렇게 비슷비슷하게 흘러간다. 월화수목금 AM 06:10 즈음이면 눈을 뜨고 일어나 버스를 몰고 매번 같은 길을 드나든다. 기울어진 우체통, 묶어둔 불독, 펍에서의 맥주 한잔은 매번 똑같기만 하고, 사랑하는 그녀와의 대화는 단조롭기만 하다. 이런 권태 속에서도 그를 지탱해주는 건 씀이다. 그 순간순간들을 시로 만들어가며 이를 기억하고 마치 일기를 쓰듯 그 시를 비밀노트에 넣어둔다.

 

반면 이슬아의 일기는 매우 다채롭다. 여느 50대 아줌마의 아프리카 지방 고군분투 이야기이면서, 유럽에서의 위협적이었던 여행담, 용기내 피임수술을 해낸 하루하루까지 여느 하루도 다채롭지 않은 날이 없다. 생각해보면 매일 하루하루를 중계하듯 에세이를 써낸다는 건 정말 고된 작업일 텐데, 이렇게 재미진 이야기를 써낸다는 게 대단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패터슨도 현슬이도 그리고 나도 매우 단조롭고 권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동시에 엄청나게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상충되는 얘기 같지만,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 멀리서 보면 단조롭고, 가까이서 느껴보면 다채롭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패터슨의 일주일 속에는 시인 꼬맹이하고의 만남도 있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치정극, 버스 고장 사건도 벌어졌다. 그뿐인가, 펍 아저씨는 하루는 여자 가슴에 눈이 팔려 본 체도 안 하기도, 아내에게 잔소리 한번 된통 당하기도 하며 하루를 다채롭게 만들어줬다. 이슬아의 하루도, 나의 하루도, 패터슨의 하루도 그렇게 단조롭지만은 그리고 화려하지만은 않은 하루하루들인 것 같다. 다만 그 둘과 나의 차이점은 이를 써 내려가느냐, 아니냐는 것.

 

에세이를 쓰던 이슬아, 시를 쓰던 패터슨은 각자의 장르에 맞게 본인들의 하루를 기록해나갔다. 이슬아는 주위의 사람들(특히 복희와 웅이)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에세이답게 구구절절 하루를 기록했고, 패터슨은 시인답게 답답하리만큼 함축적으로 본인의 하루를 압축해갔다. 장르가 다르고 표현도 다르지만 그 둘 모두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디테일을 본인 나름의 방법으로 적어나가고 있었다.

 

오늘 나의 하루는 어떻게 기억될까, 오늘 하루의 디테일을 살리지 않으면, 그걸 기록하지 않으면 마치 한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은 하루로만 기억되지 않을까.

절실하게 내 오늘 하루의 디테일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