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사랑은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오독으로부터 시작된다.
잘 아는 것보다는 미지의 무언가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는 우리는 그 미지의 영역 속에 각자의 상상과 판타지를 잔뜩 투사하여 바야흐로 상대를 신의 영역에 올려둔다. 그렇게 그녀를 계속 신계에만 모셔두면 좋으련만, 살아가다보면 정말 기적적으로 그렇게 완전무결하고 나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인 것만 같았던 상대와 만남을 시작하게 되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연애의 비극은 시작된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행복은 사랑을 시작할 때 나오곤 한다. 펀치 드렁크 러브 이건의 모습처럼 사랑의 시작은 한 인간에게 수많은 것을 선사하여,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 그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속 얘기 혹은 부끄러운 모습들을 실토해내게도 한다. 그렇게 처음의 사랑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마냥, 수많은 기적들을 만들어낸다. 처음 마음을 확인한 순간, 처음 손을 잡던 순간만큼 황홀한 순간이 또 있을까.
그렇게 완전 무결하게 시작한 연애 또한 결국 비극이 되는 이유는 사랑이 가진 여러 아이러니들이다. 서로를 더 알아감에 따라 서로에게 끼었던 미지의 구름이 걷히고, 흐릿한 모습의 신 대신 또렷한 사람 한명이 등장한다. 연인 관계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이니만큼, 그 관계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아이러니들이 구체화되고 극대화되어 관계 속에 침투한다. 나보다 상대가 나를 더 소중히 여겨주기를 원하는 마음, 갈구할 수록 더 얻기 힘들어지고 얻기 힘들 수록 더 절실해지는 사랑의 역학 관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거짓말 같은 진심, 외모도 성격도 그 아무 것도 아닌 규정할 수 없는 나 자신 그대로를 사랑해주기 원하는 것.
이런 수많은 아이러니들을 겪으며 우리는 사랑하고 살아간다.
결국 모든 것엔 처음과 끝이 있듯 사랑도 여느 세상일처럼 시시해지기도, 차마 시시해지기도 전에 끝나버리기도 한다. 사랑은 지고 끝이 나지만, 그 흔적은 내게 남아 결국 하나의 역사로 자리잡는다. 시간의 흐름을 피할 수 없듯 우리는 비극적인 사랑을 겪고서도 또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다. 어찌보면 그게 우리 삶의 이유이기 때문일까. 그 사랑의 불가피성이 내일을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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